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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대간 하늘재 - 조령구간 큰사진보기!
[사진]하늘재에서 탄항산-부봉-마역봉- 조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파노라마 2006 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좀더 큰 백두대간의 장쾌한 파노라마를 볼 수 있습니다.




 탄항산 큰사진보기! 백두대간(白頭大幹) 하늘재 - 조령 구간

위치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구간 : 하늘재 - 탄항산(월항삼봉) - 부봉 - 마역봉(마폐봉) - 조령
지정 : 월악산국립공원 / 백두대간(白頭大幹)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우리나라 땅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산줄기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척추에 해당되는 산줄기가 백두대간이다. 백두산에서 금강산과 설악산으로 내려오다 태백산(太白山)에서 남서쪽으로 뻗어내려 소백산(小白山)을 만나고 조령을 지나 속리산과 덕유산에서 지리산으로가는 큰 산줄기가 백두대간이다. 우리땅을 기록한 옛 지도자료를 근거로 하나의 대간(大幹), 하나의 정간(正幹)과 13개의 정맥(正脈)으로 나누는 산경표(山經表)가 근래에 통용되고 있지만 일제치하에서 일본정부와 일본인 학자들이 만든 학술적 결과가 여전히 우리의 지리교육에서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문제는 비단 지리교육 문제 뿐만이 아니라 역사, 미술, 군사, 교육 등에서 그 잔재가 남아 있다. 일제하의 모든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의 관점으로 우리땅에 맞는 학문적 견해와 데이타베이스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말하고 있다. 우리땅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시각은 이 땅에서 자연과 함께 숨쉬며 살고있는 우리들이 가장 잘 알수 있지 않을까?


 부봉  큰사진보기!

백두대간 하늘재-조령구간에는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는 암봉들이 옹기종기 오여있는 중부내륙 최고의 산악미를 자랑하는 구간으로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악인들이 1일 산행코스로 많이 이용하고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북으로는 하늘재에서 포암산(布岩山)과 대미산(大美山), 황장산(黃腸山), 도솔봉(兜率峰), 소백산(小白山), 선달산(先達山), 옥돌봉(玉石山), 구룡산(九龍山), 태백산(太白山)으로 이어지고, 남으로는 탄항산(炭項山)과 부봉(釜峰)을 지나 마역봉(馬亦峰)에서 조령산, 백화산, 희양산, 속리산으로 이어지는 한 가운데 자리잡은 구간이 백두대간 하늘재-조령구간이다. 그 대간에서 서쪽으로는 월악산(月岳山)이 빼어난 바위산의 풍광을 자랑하고, 동쪽으로는 문경의 명산 주흘산(主屹山)이 자리잡고 있다.


 마역봉  큰사진보기!

 백두대간 하늘재-조령구간 둘러보기! 백두대간 하늘재 - 조령구간 둘러보기...




 하늘재 큰사진보기!

하늘재는 신라 아달라왕 3년(서기156)에 개통되어 처음에는 계립령(鷄立嶺)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부터 하늘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가 국경을 맞대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신라 경순왕의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패망의 한을 품고 하늘재를 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신라의 덕주공주와 관련된 전설은 하늘재 넘어에 있는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 괴산 미륵리 사지(槐山彌勒里寺址) 와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덕주사마애불(德周寺磨崖佛)에도 전해내려 온다. 근래에 충북의 자연환경 명소 100선 중 10걸로 지정되어온 역사문화의 향기가 깃든 소중한 자연환경 명소가 하늘재 이다.


 조령제3관문 조령관 큰사진보기!

문경새재 제1관문인 주흘관은 고려 태조가 경주를 순행차 고사갈이성을 지날 때 성주 흥달이 세 아들을 차례로 보내어 귀순하였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주흘관은 영남지방과 서울간의 관문이며 군사적 요새지이다. 삼국시대에는 이보다 동쪽의 계립령(鷄立嶺)이 중요한 곳이 었으나, 고려초부터 이곳 초참(草站)을 혹은 새재라고 하므로 조령(鳥嶺)이라 이름하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주흘관은 험한 산세로 이루어진 조령산과 주흘산(主屹山)이 좌우로 펼쳐진 계곡에 위치한 천연의 요새지이다. 조선 선조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가 경주에서 북상해오는 카토오 키요마사의 군사와 이곳 조령에서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 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것이라 생각했지만 신립장군은 때가 늦었으므로 충주 탄금대(彈琴臺)로 후퇴해서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최후의 일전을 벌였으나 대패하였다. 그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이 오늘날의 제2관문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여 왜병을 기습하였다.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 되자 군사시설을 서둘러 숙종 34년(1708)에 이르러서야 3중의 관문을 완성 하였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主屹關), 제2관문을 조동문(鳥東門) 혹은 조곡관(鳥谷關), 제3관문을 조령관(鳥嶺關)이라 이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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