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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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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생가(論介生家)

위치 :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주촌리

논개생가는 선조7년(1574) 9월 3일 장수군 자에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태어난 논개를 기리기 위하여 조성되었다. 논개의 아버지는 밀양박씨이고 갑술년 갑술월 갑술시의 특이한 사주로 태어났다 한다. 술(戌)은 개(犬)를 뜻하기 때 문에 논개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논개는 어버지의 서당에서 나이10여세가 되기전까지 한문을 배웠으며 천품이 선하고 영리하여 귀여움을 독차지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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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는 선조21년(1588) 8월 숙부인 주달무가 신내마을 김풍헌의 민며느리로 논개를 팔아 넘기자 모녀는 피신 하였는데 이에 김풍헌은 모녀를 관아에 제소 하였으나 당시 장수 현감인 최경회는 숙부 주달무의 잘못을 인정하고 모녀를 무죄 방면하였다고 전해내려 온다. 이런 인연으로 오갈데 없는 논개 모녀는 내아에 머물면서 현감 부인의 병시중을 들게 하였으며 정성으로 병간호와 최현감의 시중을들었다고 한다. 이에 감탄한 현감부인 김씨 부인은 생명을 오래 유지하지 못할 자신을 대신해서 척실로 맞이 할 것을 권유하여 이승을 떠난후 최현감과 부부의 정을 맺게 되었다고 전해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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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25년(1592)에 왜적이 침략하여 부군인 장수현감 최경회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부임하였으며 후퇴하는 왜군과 진주성에서 최후까지 싸우다 장렬히 순국하였다. 이에 논개는 7월 7석날 진주성 남강변에 위치한 촉석루 에서 열린 왜군의 승전잔치에 진주기생으로 변장하여 왜장 게야무라로꾸스께 (毛谷村文助)를 껴안고 진주 남강에서 몸을던져 왜장과 함께 순절하니 20세의 나이로 풍전등화의 기로에 서있는 조선을 지킨 의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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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논개의 생가는 현재의 저수지인 주촌마을에 있었으나 저수지를 막으면서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생가터에는 논개동상과 사적불망비각, 논개 유허비, 관리사등과 간단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조선의 패망의 목전에서 목숨을 바쳐 적국의 왜장을 죽이고 함께 순국한 논개의 충절과 한여인으로서의 애잔한 삶을 논개생가에서 떠올리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의 이기심이 부끄 러울 따름이다. 수주 변영로님의 논개를 떠올리며 잊혀진 전설처럼 희미해져가 는 한여인의 비극속에 꽃핀 충절과 사랑을 찾아 전국방방곡곡 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논개의 영전앞에 추모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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