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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제 1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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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제 1관문,주홀관)


위치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문경새재의 관문은 고려 태조가 경주를 순행차 고사갈이성을 지날 때 성주 홍달이 세 아들을 차례로 보내어 귀순하였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 관문은 영남지방과 서울간의 관문이며 또한 군사적 요새지이다. 삼국시대에는 이 보다 동쪽의 계립령이 중요한 곳이었는데, 고려초부터는 이곳 초참을 혹은 새재라고하므로 조령이라 이름하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유기나가가 경주에서 북상해오는 카토오.키요마사의 군사와 이곳 조령에서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 것이라 생각했지만 신립장군은 때가 늦었으므로 충주로 후퇴하였다. 그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이 오늘날의 제 2관문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여 왜병을 기습하였다.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되자 군사시설을 서둘러 숙종 34년(1708)에 이르러서야 3중의 관문을 완성하였다. 문경에서 충주로 통하는 제 1관문을 주흘관, 제 2관문을 조동문 혹은 조곡관, 제 3관문을 조령관이라 이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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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관문(주흘관)

영남 제1관문인 주흘관은 새재 입구에 있는 성문으로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다. 숙종 34년(1708년)에 축조하였고, 영조 때에 조령진이 설치되어 문경현감이 수성장을 겸하였다. 한말 항일의병전쟁떄에 일본군이 불태웠던 문루를 1922년에 다시 지었다. 주흘관은 정면 3칸 측면 2칸 협문이 2개가 있고 팔작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가 3.6m, 폭 3.4m, 길이 5.4m이고,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cm이다. 좌우의 석성은 높이 4.5m, 폭 3.4mm, 길이 188m이고, 부속산성은 높이가 1-3m, 폭 2-4m,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쪽이 400m이다. 개울물을 흘려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중 가장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1965년 11월 9일 문경군 교육청에서 제 1관문 수선공사의 설계승인을 얻어 1966년 보수하였다. 1969년 문화재 보호업무가 교육청에서 시군으로 이관되고 1972년부터 문화재 감시원이 배치 됐으나, 1988년 향토예비군이 창설된 이후 전략요충지라 하여 1973년 예비군 700여명이 성벽위에 폭과 높이 1m정도 증축하여 총구를 만들어 원형이 변경되었다. 1974년 문경군에서 보수정화 공사를 시행하였다. 이때 성문, 후문 좌우계단, 좌측 성곽 320m, 협문등을 보수하였다



문경새재

새재는 새도 날아넘기 힘든 고개, 또는 억새풀이 많은 고개로 풀이되고 있으며 <고려사>에는 초점,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문경새제는 조선시대 한양과 영남을 잇는 가장 큰 도로인 영남대로상에 위치하여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3개의 관문과 포장되지 않은 새재길을 찾아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당시의 교통여건으로는 낙동강과 한강을 잇는 가장 짧은 고갯길이었으며 영남의 선비를 비롯한 보부상, 영남의 세곡(稅穀)과 궁중 진상품등 각종 영남의 산물(産物)이 새재길을 통해 충주의 남한강 뱃길과 연결되어 서울 한강 나루터에 닿았으니 새재는 한강과 낙동강의 수운(水運)을 활발하게 연결시켰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새재주변에 경상북도개도 100주년 기념 타임캡슐, 문경새재박물관 , 혜국사 등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어 관광객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주변에 우리민족의 등뼈를 이루는 백두대간 중심에 위치한 주흘산, 조령산, 조령산, 부봉 등 명산들이 소재하고 있다. 문경읍 상초리에 소재하고 있다.



문경(聞慶)새재의 유래(由來)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이 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니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옛 문헌에 초점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지릅재와 이우리재사이의 [새(사이)재], 새로 된 고개의 [새재] 등의 뜻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뒤에 이 곳에 3개의 관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이 곳은 자연 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과 설화 민요(새재아리랑)등으로 이름 높은 곳이다. 이 곳에는 나그네이 숙소인 원터,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 받았다는 교구정터가 남아 있고, 옛날에 산불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한글 표석 "산불됴심"비가 남아있다. 그리고 역사에 얽힌 갖가지 전설을 비롯하여 임진왜란과 신립장군, 동학과 의병이 남긴 사담이 골골이 서리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이 일대를 1974년 지방기념물(제 18호), 198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 보호하고 있어 전국에서 등산객이 많이 찾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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