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문/화/지/도

> 경상북도>경주시>불국동>
바로가기

불국사


 큰사진보기!
불국사(佛國寺)


사적 및 명승 제 1호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신라시대의 여러 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것으로 평가 받는 최고의 문화유산은 바로 경주 불국사다. 불국사의 면적은 11만 7,541평이다. [불국사역대고금창기]에 의하면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15년(528)에 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과 기윤부에는 왕의 모친 지소부인을 위하여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봉안했고, 문무왕 10년(670)에는 무설전을 세워 [화엄경] 을 강설하였으며, 그 후 고구려가 패망한 지 83년이 되는 경덕왕 10년(751)에 낡고 규모가 작았던 이 절을 당시의 재상 김대성이 크게 재창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 [삼국유사] 권5 『대성효2세부모(大成孝二世父母)』조에는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김대성은 이 공사가 착공된 지 24년 만인 혜공왕 10년(774)에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사망했으며, 그 뒤 불국사는 국가적 사업으로 이어져 착공 30년 만에 완성을 본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로 보건대, 처음에 소규모로 창건되었던 불국사를 통일 뒤 재력이 풍족해진 경덕왕때 김대성이 대찰로 확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가람으로 완성되어 신라 호국 불교의 도량으로서 법등을 이어온 불국사는 조선 선조 26년(1593) 왜병의 침입 방화로 650여년간 내려오던 건물이 모두 불타버렸다. 그 후 대웅전 등 일부의 건물이 다시 세워져 그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불국사가 문화유산으로 보존 전승되고 나라를 사랑하는 호국정신을 기리는 도량으로서 옛모습을 되찾게 하고자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쳐 창건 당시의 건물터를 발굴 조사하고 그 자리에 다시 세움으로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당시 신라인들은 이상적 피안의 세계로 불국사를 그렸는데 그러한 불국을 향한 염원은 3가지 유형으로 잘 나타났다. 하나는 [법화경]에 근거한 대웅전을 중심으로 하는 석가염불의 사바세계를, 그리고 [무량수전] 또는 [아미타경]에 근거한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는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요, 또 다른 하나는 [화엄경] 에 근거한 비로전을 중심으로 하는 비로자나불의 연화자세계의 불국으로 종합되는 전체의 구성을 통하여 그 특징적인 표현을 이루어 놓았다. 불국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해탈교(解脫橋)를 건너면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있는 천왕문(天王門)이 나온다. 다시 천왕문을 통과하여 반야교(般若橋)를 지나면 큰 석축이 나타나는데, 이 석축 위에 펼쳐진 세계가 바로 불국토인 것이다. 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를 넘어 자하문(紫霞門)에 들어서면 펼쳐지는 곳이 석가여래의 사바세계다. 대웅전 앞 좌우에는 현세불(現世佛)인 석가여래를 상징하는 석가탑(釋迦塔)과 과거불(過去佛)인 다보여래를 상징하는 다보탑(多寶塔)이 있다. 다시 연화교(蓮花橋)와 칠보교(七寶橋)를 올라 안양문(安陽門)을 들어서면 극락전(極樂殿)이 나오는데 그 안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금동 아미타여래상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며 극락왕생을 바라는 아미타 신앙이 매우 성행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 즈음 만들어진 불국사에서 극락전이 있는 공간은 대웅전이 있는 공간보다 좁고, 석축의 높이도 전체적으로 한 층 낮게 되어 있다. 이는 아미타정토가 가장 낮은 근기(根機)를 가진 중생을 위한 것이라는 화엄사상에 입각하여 설계한 때문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무설전 뒤쪽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毘盧殿)이 있는데 비로자나불이 하고 있는 손모양인 지권인(智拳印)은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며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둘이 아님을 상징한다. 화엄사상에 따르면 근기가 가장 높은 중생이 도달 할 수 있는 경지가 연화장(蓮華藏) 세계로, 이는 법신불(法身佛)로서 절대적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이 머무는 세계이다. 천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불국사는 다보탑, 석가탑으로 불리는 3층석탑과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교, 백운교, 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교 칠보교가 당시 신라 사람들의 돌을 이용한 예술품의 훌륭한 솜씨를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금동비로자나불상, 극락전에 모셔져 있는 금동아미타여려좌상 등을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산들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되새기게 한다. 경내에 있는 문화재로는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 20호), 불국사 3층석탑(국보 제 21호), 연화교· 칠보교(국보 제 22호), 청운교· 백운교(국보 제 23호),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 26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 27호), 불국사 사리탑(보불 제 61호) 등이 있다.




 다른사진 둘러보기! 불국사 둘러보기...




 큰사진보기!
다보탑(多寶塔)

국보 제20호

국보 20호인 다보탑의 건립 연대는 서쪽의 삼층석탑과 함께 신라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한 무렵으로 추정된다. 다보탑의 특징은 한마디로 완전히 규범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기발한 착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높이 10.4m, 하층 기단에는 4면에 계단이 설치되고 난간이 있었으나, 현재는 바닥의 기둥만 남아 있다. 상층 기단에는 4우주와 중당에 네모진 탱주를 세우고, 우주 위에 2단의 두공을 십자형으로 얹어서 사각형 갑석을 받게 했다. 이 기단에는 원래 4면에 돌사자를 배치했으나, 지금은 1구만 남아 있다. 연화대좌에 새긴 꽃 모양이며 화려한 목걸이로 미루어 보아 이 사자는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고 장식적인 사치를 즐겼던 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하게 만든다. 이렇듯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다보탑은 마치 목조구조물을 보는 듯 아름답다. 1층은 억센 사각, 2층은 아담한 팔각, 3층은 부드러운 원 이렇게 변화를 주면서 강함은 차츰 연약하게 되고 억센 힘은 점점 부드러워지는 다보탑은 복잡함이 아니라 정교함과 조화를 느끼게 하는 훌륭한 걸작으로 평가된다. 현재 있는 다보답은 1925년에 수리한 것이다.



 큰사진보기!
석가탑(釋迦塔)

국보 제 21호

석공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뜻한 전설을 간진하고 있는 석가탑(무영탑이라고도 불림)은 김대성이 불국사를 대규모로 중창했던 신라 경덕왕 10년(751)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높이는 8.2m로 건립 이후 상륜부를 제외하고는 큰 손상 없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2중의 기단 위에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이 단순한 모양으로 크기가 줄어들면서 차곡차곡 쌓아져 3층으로 솟아오르는 석가탑의 기본양식은 감은사터 삼층석탑과 고선사터 삼층석탑으로 이어지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부는 몇 장의 돌로 결구되었고, 아래위 면석은 탱주 둘을 세워 3구로 구분되어 있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각각 한돌이며, 각 층 옥신에는 4우주(隅柱)가 있을 뿐 다른 조식이 없다. 옥개석 받침은 각 층이 5단이며, 위에는 각형 2단의 옥신받침이 있다. 상륜부는 노반· 복발· 앙화만 남아 있었으나, 1966년 불국사 복원공사 때에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의 상륜부를 모방하며 결실된 부분을 보충하였다. 그래서 단정한 기단부와 탑신부에 비해 상륜부가 다소 시끄럽고 무겁게 보인다. 한편 보수공사 도중 석탑 안에서 사리 장업구와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이라 할 수 있는 무구정광다라니경(국보 126호)이 발견되었다. 탑 주위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연화가 조각된 8개의 둥근 돌을 배치하고, 이들 연화석 사이에 긴 돌을 끼워 경계를 삼았는데, 이것은 [팔방금강좌] 라 하여 정역을 나타내는 표지이다. 석가탑이 보여주는 완벽한 균형미는 치밀한 계산으로 만든 상승감과 안정감에서 비롯된다. 1층의 몸돌과 2, 3층의 몸돌의 비율이 4: 2: 2를 보이는 것은 감은사탑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래쪽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을 고려한 것이다. 또한 지붕돌의 끄트머리를 보면 위로 치켜올라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붕돌의 낙수면 끝을 사선으로 내려친 것으로 끝이 위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큰사진보기!
연화교. 칠보교

연화교는 높이 2.31m, 너비 1.48m, 칠보교는 높이 4.06m, 너비 1.16m, 재질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국보 제 22호의 다리이다. 가구 수법은 맞은편에 있는 청운교. 백운교와 비슷하며 전체의 높이가 청운교의 높이와 같다. 연꽃잎이 새겨진 아래쪽의 계단이 연화교이고 위쪽이 칠보교이다. 밑에 있는 연화교는 10단의 층계로 되어 있는데 디딤돌마다 안상을 새기듯이 연화를 무늬 놓아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지금은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고 사람들의 통행이 심했던 까닭에 새겨진 연꽃무늬가 거의 마멸되었다. 그래서 통행은 금지되고 안양문에 올라 내려다 보아야 한다. 칠보교는 8단의 보계로 되어 있는데, 연화교와는 달리 한 장의 긴 돌로 된 등형으로 양분되었다. 여기에는 아래위로 돌기둥이 남아 있어 돌난간을 설치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다만 규모가 작아졌으므로 다리 밑에는 통로를 만들지 않았다. 칠보교를 다 오르면 안양문이 나오고 그 안양문을 통과하면 아미타의 극락세계인 극락전 영역에 이르게 된다. 이 석제는 동석제의 웅장함에 비해 섬세하고 아름답다. 조성 연대는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했을 때인 8세기 중엽, 경덕왕 재위 때로 추정된다. 1961년경 일본인들에 의해 해체, 수리되었는데, 이때에 일부가 왜곡된 것을 1974년 중수할 때 다시 옛 모습으로 재현시켰다.




 큰사진보기!
청운교(靑雲橋). 백운교(白雲橋)

범영루와 좌경루가 솟아있는 석축 중앙에 쭉 힘차게 내뻗은 계단이 둘 있다. 위쪽의 16계단이 높이 3.15m, 너비 5.09m의 백운교이고 아래쪽의 18계단이 높이 3.15m, 너비 5.09m의 청운교이다. 청운교 밑에는 무지개처럼 둥근 들보 모양으로 만들어진 홍예문이 있다. 원래 석축 아래에는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계단 왼쪽에 토함산의 물을 끌어들여 연못으로 물이 떨어지면 거기서 이는 물보라에 무지개가 떴다고 한다. 청운교는 등형에 의해서 좌우로 구분되어 있다. 등형에는 중앙에 능선을 두었고, 좌우쪽 양끝에 난간이 가설되어 있었던 듯 하나 지금은 아래위에 돌기둥만 남아 있다. 다리 밑은 작은 돌을 짜맞추어 궁륭형 통로로 만들어 사람이 다닐 수 있게 하였다. 그 위쪽 양끝에는 등형까지 내밀린 갑석이 있는데, 우각의 반전수법은 다보탑이나 석가탑의 반전수법과 똑같다. 청운교를 다 오르면 서쪽으로 범영루 아래의 환상적인 돌기둥을 지나 극락전까지 이르는 통로가 마련되어 있다. 청운교 위의 백운교는 16단의 층계로 되어 있는데, 규모가 작을 뿐 구성양식은 청운교와 똑같다. 청운교와 백운교 계단을 다 올라서면 석가모니의 피안 세계인 대웅전 영역으로 들어서는 제일 관문인 자하문이다. 부처님의 몸을 자금광신이라고도 하는데 자하문이란 바로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자주빛 금색이 안개처럼 서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 문을 통과하면 세속의 부지와 속박을 떠나서 부처님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한편 자하문에서 내려다보면 범영루와 좌경루를 받들고 있는 주춧돌이 보이는데 특히 범영루의 주춧돌은 특이하게 쌓여있다. 주춧돌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각기 8매의 판석으로 조립되었는데 밑부분을 넓게 하고 중간에는 가늘고 좁게 하였다가 다시 밑부분과 같이 넓게 쌓았다. 이러한 건축양식은 모방할 수 없는 신라 특유의 찬란한 기술이다. 이렇듯 청운교와 백운교는 정교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웅장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걸작이다. 건립연대는 김대성에 의해 불국사의 중창이 이루어진 8세기 중엽 신라 경덕왕 때로 추정된다.




 자유 게시판! 불국사 게시판





*.불국사 가는 길

*.불국사 주변 음식점

*.불국사 주변 숙박업소



 소구리 자발적 유료화 서비스  참여하기! 안녕하세요? 소구리 문화지도 정보 이용에 대한 자발적 유료화 정책을 시행합니다.

소구리 문화지도 자발적 유료화 참여하기






소구리 문화지도 자발적유료화 참여하기 *__^ 도/시/여/행
서/울/여/행